2017.12.07. 매일노동뉴스. 결국 사람을 위하여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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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8-04-25 16:18 조회 2,35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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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후배가 나에게 왜 민주노총 법률원을 그만뒀는지를 물었다. 활동가가 아닌 일반 노무사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줬다. 활동가는 그만큼 무거운 삶의 과제였다. <결국 사람을 위하여>(사진·사회건강연구소 펴냄·정진주 외 지음)의 주인공인 활동가 4명의 삶을 보면, 참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산업재해 인정 투쟁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250일을 싸웠지만, 조직 내부에서 실망감과 무관심으로 인해 힘들고 우울증과 공황장애까지 겪었다”는 박세민 금속노조 노동안전실장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다. 이은주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마창산추련) 상임집행위원이 말한 그 ‘견결(堅決)함’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결국 사람을 위해 싸우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결국 사람을 위하여>는 김신범 원진노동환경연구소 부소장과 박세민 노동안전실장·이은주 상임집행위원·이훈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간략한 평전이다. 안전보건 활동을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했던 네 명의 삶을 통해 ‘왜 활동가가 됐는지, 안전보건 운동이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 주요 이슈와 투쟁은 무엇이었는지, 과제와 고민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네 명의 활동가는 노동안전이라는 큰 범주에서 각각 조금 다른 영역(연구소·노동조합·지역)에서 활동하는 방식과 내용을 보여 준다.

김신범 부소장은 화학물질 관련 자문교사 역할을 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를 산재사건을 진행하면서 참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자문을 부탁받을 때마다 항상 웃으면서 “기다렸어요. 언젠가 연락이 올 줄 알았어요”라며 흔쾌히 사건을 도왔다. 현재도 그의 조력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목사였고, 대학교 때 방황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나는 김신범 부소장에게 발암물질과 그 유해성을 배웠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가 연구와 활동, 그리고 고민을 어떻게 노조에서 마을로, 우리 사회 전체로 넓히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았다. 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사람들 곁에서 참으로 우직하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금속노조의 노동안전 사업과 투쟁은 한국 노동조합운동의 핵심이다. 산재보험제도 개혁투쟁, 발암물질 추방투쟁, 발암물질 조사사업, 근골격계질환과 직업성 암 집단 산재투쟁 같은 굵직한 투쟁과 제도개선은 사실 금속노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중심에 박세민 노동안전실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런 활동을 했던 박 실장이 학생운동을 하다 정치적 탄압으로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과거는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왜 박 실장이 원칙론자로 불리며 25년간 치열한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은주 집행위원 이야기는 흡인력이 있다. 많은 산재사건에서 겪은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런지 모르겠다. 그의 이야기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를 끌어당겼을 수도 있다. 첫 산재사건 당사자 이름을 잊을 수 없다는 얘기나 시신을 옆에 두고 산재와 투쟁 문제를 논의한 경험도 그렇다. 이은주 집행위원 말대로 산재는 “돈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어떤 노동을 했고 그 결과 어떤 병에 결렸는지 인정받는 것이고, 이는 존재와 삶을 인정받는 문제”다. 두 아들을 산재로 잃은 이석수씨 이야기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되묻는 과정이었다. 금속노조의 근골격계질환 집단요양 투쟁이 마창산추련의 대우조선 투쟁에서 발화한 것도, 그리고 그가 근골격계 유해요인 지역조사를 직접 수행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과로사한 이주노동자 관련 투쟁 과정이 ‘사람들과의 공감과 소통의 기제’가 됐다는 것에서 실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한때 심리적 거리감이 있는 단체였다. 연구소가 가진 이미지가 대단히 원칙적인 데다 전문가집단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다.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현장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있다는 믿음이다. 연구소가 금속노조 두원정공지회에서 시작한 노동강도 평가사업이 주간연속 2교대제를 이뤄 냈고, 이것이 현대자동차 등에도 적용된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조합원을 한 명씩 만나 인터뷰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과정이 수반된 지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지금도 열아홉 살 대우조선 노동자가 떨어져서 사망하는 이 현실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데, 건강권 운동은 그 눈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닐까. 우리가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시기에 그 노동자 눈으로 세상을 본 것처럼 지금은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비정규 노동자의 눈으로 보고 같이 호흡해야 되는 거 아닐까.”(이은주 집행위원 인터뷰 중)

지난달 19일 열여덟 살 생일을 나흘 앞두고 사망한 고 이민호군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