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의 일-생활 균형 경험에 관한 탐색적 연구(202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21-03-12 18:33 조회 2,101회

첨부파일

본문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의 일-생활 균형 경험에 관한 탐색적 연구(2020) - 김향수, 김미영 

  

전문은 첨부파일에서 확인하세요.

 

< 요약 >

 

1. 서론

 

일과 생활의 균형(work-life balance)은 우리사회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부작용 해소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를 두고 현재 정책 과제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개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과 생활의 균형 연구와 정책은 일가정 양립이라는 주로 노동자 및 양육자 역할을 지원하는 방향에 집중되고, 건강한 개인에만 맞춰진다는 점이 본 연구의 문제의식이다.

 

본 연구는 한국 사회가 건강한 몸able-body”을 기준으로 기업과 정부 정책이 수립되고 지원되는 현실에서,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이 일과 생활의 균형 경험을 통해 어떠한 사회적, 제도적 지원책을 요구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만성질환을 보건의료 문제로 국한하기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영역에서 대응해야 할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을 대상으로 사례 연구(case study)를 통해 탐색하고자 하였다. 연구참여자는 사회건강연구소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 모집 공고문을 게시하여 공개 모집하였고, 병력과 직업력이라는 기준으로 12명을 선정하여 심층면접을 시행하였다. 연구는 IRB 규정에 따라 수행되었고, 녹음된 자료는 전사되었다. 분석은 사례 간 분석과 사례 내 분석법을 활용하였다.

 

2. 일 경험

 

참여자들의 일 경험은 크게 구직, 일터에서 계속 일하는 경우, 아파서 일터를 떠난 경우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인턴 등으로 생애 첫 노동을 시작하며, 연령, 경력 등의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첫째, 구직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질병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취업에 불이익을 경험한다. 질병으로 인한 취업 자격 제한은 의학적 근거보다 질병이 업무에 지장이 될거라 여기거나 사회적 편견과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낮은 수준의 인식에 기인한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은 이들의 일터 접근성을 낮추는 사회적 요인이다.

둘째, 참여자들은 일터에서 질병으로 인해 생산성, 업무 능력, 결근에 대한 우려라는 부정적 인식 뿐 아니라 프라이버시 침해 경험을 보고한다. 기본적인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고 노동 강도만 강조되는 일터에서, 이들은 때때로 통증, 피로감, 어지럼증 등 증상을 느낄 때, 휴식을 요구하지 못한 채 일하며 더 아파졌다. 몇몇 참여자들은 우호적상사와 동료의 배려로 업무 조정, 휴식 시간 보장, 정서적 지원 등으로 회복하여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병가와 휴가 이용 경험은 직장, 노동형태, 종사상의 지위에 따라 다르게 보고된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은 병가나 월차, 출퇴근시간 조정은 무급으로만 가능했고, 주어진 업무를 위해 시간 외 근무를 하였다. 장기간 병가를 사용한 참여자들은 유급 병가가 보장되어도, 대체 인력이 투입되지 않아 업무 복귀에 대한 동료들의 압력을 경험한다.

 

셋째, 참여자들이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였기에, 몸이 아파지면 스스로 사직을 선택한다. 표면적으로 스스로 선택한 사직이지만, 병가나 근무 시간 조정과 같은 협상력이 부재하기에 자발적 사직으로 보기 어렵다. 이들은 회복 후, 자신의 몸을 관리할 수 있고 병세에 따라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일자리로 이직하려 한다. 몇몇 참여자들은 대학 진학, 직업 교육을 받지만 이들의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요구에 맞춘 지원이 없어 교육 이수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일 년 이상 집중 치료 기간을 보낸 참여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이전 종사상 지위와 직업 경력과 무관하게 일하게 되며, 몸의 회복과 직장과 업무 적응을 위한 개인적 분투를 경험한다.

 

넷째, 이들은 일의 의미에 있어 돈을 버는 수단이자 치료와 건강의 조건, 자아 실현, 사회적 관계 형성 등 다양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일을 통한 자아 성취를 강조한 이들은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과 일중심적 가치관, 일터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일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며 만성질환이라는 신체적 조건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탐색하며 경력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계속 질문한다.

 

3. -생활 균형 경험

 

본 연구는 참여자들의 일 이외의 생활을 개인관리, 기타 생활(여가, 소비, 사회활동 등), 가족 및 사회적 관계, 자기정체성 등으로 구분하여 일과 다른 생활 간의 구조적 관계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 영역 자체가 갖는 특성, 그 안에서 참여자들의 인식정서실천적 경험까지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일 생활 균형과 관련된 다섯 가지의 중심 주제를 도출하였고, 중심 주제를 기준으로 주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참여자들은 질환의 발병 시기는 다르지만, 질환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유지 시간, 식단, 여가, 소비, 사회적 활동과 같은 다양한 일상생활을 건강이나 질환 관리를 중심으로 조정하고 그렇게 조정된 자신의 일상에서 다양한 인식과 감정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특히 조정된 일상은 참여자의 출산이나 양육과 같은 생애사적 경험이나 최근 코로나19와 같은 현상들과 교차하면 구조적심리적 분배가 더욱 불균형적일 수 있다는 참여자들의 경험이 보고되면서 일을 제외한 일상에의 적응은 역동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 참여자들은 경로가 동일하지는 않지만 각자 일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일과 다른 생활 간의 관계를 건강을 중심에 두고 일 생활을 조정하거나 반대로 일을 중심에 두고 다른 일상을 최소화하는 결정을 하였고 그 결정에는 질환의 관리 요구 정도, 일 가치관, 노동형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였다. 참여자들의 이러한 생활 구조로 생활의 균형 있는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편이지만 참여자들은 나름대로 일 생활을 보완하거나 일 생활로부터 경험한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활동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질환을 계기로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사회활동, 자기계발, 연극 참여, 책 쓰기 등과 같은 또 다른 일상의 확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셋째, 참여자들은 질환 발병 후 가족관계에서 다양한 변화와 감정을 경험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참여자들은 가족들로부터 돌봄을 포함한 물질적 지지, 정서적 지지 등 다양한 지원을 받았으며 그러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고마움, 생애주기상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발달과업적 요구와 질환 때문에 돌봄 지원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상황으로 인한 내적 갈등, 미안함 등의 감정을 경험한다. 특히 그러한 돌봄이 사회 제도가 아닌 가족의 책임으로만 이루어지는 상황과 그것으로 인해 가족 내부의 기능이 변화했던 경험을 토로한다. 반면 가족으로부터 지지받거나 이해받지 못한 참여자들은 본인의 투병과정 중 가족과의 갈등을 경험하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기를 스스로 돌보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된다. 특히 질환에 대한 가족 내 정보 공유의 부족, 물질적 지원과 정서적 지원 간의 간극 등으로 참여자들은 가족 안에서도 질환의 낙인을 경험하며 상처를 받는다.

 

넷째, 참여자들 대부분은 질환 발병 후 사회적 관계 맺기의 방식과 그것에 대한 인식 및 감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보고한다. 참여자들은 질환 발병 후 약해진 체력과 수시로 찾아오는 통증 등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약속을 미루거나 모임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참여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결국은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방법을 터득하거나 질환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관계의 위치를 조정해나가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질환을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오해를 최소화하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인간관계 맺기의 방식을 새롭게 형성해 나간다.

 

다섯째, 참여자들은 질환을 경험하면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질환을 지닌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나 가치관의 변화에는 참여자 스스로가 지닌 내재적인 요인뿐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맥락이 동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참여자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극복이라는 단어와 질환을 평생 관리해야 하는 자신들의 상황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하며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태도도 변화시킨다. 질환이 주는 고통으로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삶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자신의 질환 경험으로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능력이 늘어난 자기에 대한 평가도 있었으며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게 생각보다 없는 현실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질환을 지니고 있지만 그러한 자신의 상황이나 사회와의 갈등 속에서 사고의 전환부터 구체적인 행동까지 다양한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의 일 생활 균형은 참여자들이 지닌 생애주기 과정이나 노동 환경특성 등의 영향을 받으며 그 균형의 형태나 의미가 다양하게 형성되고 있었다. 그러나 참여자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일상에서의 자원 부족이나 갈등은 일상의 구조를 생존을 위한 수준에 머무르게 하며 복합적인 위기를 경험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의 지원이 일 중심적이기보다는 보다 다양한 일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살아가기 위해 취했던 개인적인 노력이 사회 안에서 제도적으로 지지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4. 사회적 안전망 경험과 욕구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어떻게 활용되고 인식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이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거나 개선하는데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의 사회적 안전망 관련 경험과 욕구를 이해하기 위하여 일 생활 지원 제도, 사회보험과 서비스 제도, 보건의료 제도 등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첫째, 일 생활 지원 제도에 있어,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와 관련해서 참여자들은 일 생활과 관련해서 사회가 지닌 다양한 편견이나 건강한 몸을 전제로 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업준비 단계에서는 건강한 몸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나라의 취업준비 지원 제도 개선, 다양한 직업교육을 통한 청년들의 일에 대한 선택권 확대 등의 요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일 생활을 하는 조직 안에서 근로지원이나 공간, 휴식시간, 조직 구성원들의 인식 개선 등이 필요하며 근무제도 차원에서는 근무형태의 유연성이나 휴가제도에서의 개선 등을 이야기하였다. 그러한 제도들에 대해 참여자들은 그들의 소득, 시간, 질병관리, 심리적 안정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둘째, 사회보험과 서비스 제도와 관련해서 참여자들은 참여자 대부분의 고용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상황과 연결했을 때 질병 관리를 위한 지출,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비용, 일 생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비용 등은 참여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경제적 지원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또한 정책 대상이 되는 청년의 한정적인 정의 때문에, 가족에게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혹은 질환의 치유 과정을 분절적으로 접근하는 지원 제도의 한계 때문에 사회서비스 활용에서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서비스 기회 확대를 요구하였다.

 

셋째, 보건의료 제도와 관련해서 참여자들은 개별 질환 치료 중심의 의료서비스에서 통합적 의료서비스로의 확대, 의료비 지원 확대, 심리 상담 등 정신보건서비스 제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5. 결론

 

만성질환을 지닌 이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협상해 가는지를 분석하며, 참여자들이 언급한 다양한 사회적 안전망의 요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일 생활과 관련해서 사회가 지닌 다양한 편견과 건강한 몸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직업적인 측면에서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조직문화까지 다양한 변화와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사회서비스와 관련해서 경제적 비용 지원과 서비스 수급자격조건의 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만성질환을 지닌 청년의 노동시장 참여, 일 생활 균형은 중요한 정책 과제로 간주되어야 한다.

 

d7f5b04722b0403eba88633c40d13ecc_1615604177_6519.png